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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코로나 바이러스, 남한의 승리와 미국의 실패

보리초코보 2020. 4. 14. 04:01

워싱턴 포스트에 실린 역사학자 Gregg A. Brazinsky의 글 "South Korea is winning the fight against covid-19. The U.S. is failing." https://www.washingtonpost.com/outlook/2020/04/10/south-korea-is-winning-fight-against-covid-19-us-is-failing/ 을 번역해보았다. 영어 공부 삼아 그리고 내 연구 주제랑도 상당히 관련있는 기사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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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바이러스, 남한의 승리와 미국의 실패: 승리를 위한 한국의 청사진

 

전세계적인 코로나바이러스 전파로 수천이 사망하고, 정부들이 이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이때, 한 국가가 거듭 대처의 효율성으로 찬사를 받고 있다. 바로 남한이다. 최초의 사례들이 등장한 이후, 남한 정부는 미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속도로 검사의 속도를 높였다. 4월 8일, 미국에서 사망자수가 13000명(인구 백 만 명 당 39명)에 이르고 새로운 사례들이 계속해서 빠르게 증가하는 반면, 바이러스로 인한 남한 사망자의 수는 200명(인구 백 만 명 당 4명)이었으며, 새로운 사례가 나타나는 속도도 느려지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많은 이들에게 상대적으로 조그마한 한 아시아 국가가 안타깝게도 전세계 상당수가 실패하고 있는 일에 성공하고 있다는 사실은 수수께끼이다. 2015년에 있었던 또다른 호흡기 전염병인 중동 호흡기 증후군(주:MERS)에 대처했던 한국의 경험 때문인가? 한국의 우수하고 접근성 높은 헬스 케어 시스템 때문인가? 문화적 가치 때문인가? 마스크 쓰기? 이런 요소들의 일부가 한국이 빠르게 선별 진료소(testing station)를 채용하게 하고, 뒤이은 환자 식별과 치료를 촉진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남한의 효과적인 반응은 역사적으로 뿌리를 둔 두 요소에 의존한 것이기도 하다. 국가와 프라이빗 섹터 간 긴밀한 협력과, 대규모의 의료 개입에 대한 남한 대중들의 자발적이며 거의 열광적인 포용이 그것이다. 이러한 두 현상은 냉전 시기의 급격한 산업화와 국가 건설이라는 남한의 경험에 기인한다.

1월 20일 남한에서 최초의 코로나 케이스가 보고되었을 때, 정부는 즉각적이며 포괄적인 행동의 필요성을 인지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한국 보건복지부는 겨우 4건의 사례가 확인된 1월에 의료 기업 대표들과의 회의를 소집했다. 보건복지부 공직자들은 대표들에게 국가에서 빠르게 준비되는 검사들이 필요하다고 했으며, 질병관리본부에서 빠르게 승인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겨우 1주일 남짓한 시간 내에 정부는 코젠 바이오텍에서 개발한 검사 키트를 승인했으며, 곧 다른 여러 기업에서 개발된 검사 키트들이 승인될 예정이다.

3월 기준으로 그러한 노력은 매우 성공적이어서, 47개국에서 한국의 검사 키트 수입을 요청 중이다. 마스크와 호흡기(ventilator) 생산을 둘러싸고 3M과 제너럴 모터스와 시시한 말다툼을 하고 있었던 트럼프 대통령과 비교해보면, 남한에서는 정부와 프라이빗 섹터가 아주 매끄럽게 협력하고 있었던 것이다. 기업들은 정부의 강력한 지원을 받으면서 국가의 요구에 재빨리 반응했다.

정부의 긴급 명령에 대한 기업들의 재빠른 반응은 1960년대 남한의 권위주의 지도자인 박정희에 의해 선도된 국가 서비스 내의 국가-프라이빗 섹터 간 파트너쉽의 패턴을 따르고 있다. 1961년 군사 쿠데타로 박정희가 권력을 획득 했을 때, 남한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이자, 종종 남한을 "쥐구멍(rat hole)"로 지칭하곤 했던 많은 미국 공직자들에게는 가망없는(hopeless) 나라였다. 그러나 두 자릿수의 경제 성장률 달성, 그리고 빈곤한 이 나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겠다는 열정적인(all-consuming) 결정이 박정희를 이끌었다.

비록 박정희가 권력을 잡았던 19년 동안 미국의 조언을 많이 받아들이긴 했지만, 그가 채택한 발전의 모델은 미국식의 자유 시장 자본주의를 모방한 것은 전혀 아니었다. 그것은 남한의 재벌들과, 국가의 지도를 따르고 수행했을 때 그들에게 특별한 인센티브를 주는 국가를 긴밀하게 연결시켰다. 1960년대에, 박정희는 자신에게 필요한 경제적 이륙기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급격하게 수출을 증가시켜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박정희 정부는 기꺼이 해외시장에 자신들의 수출 상품-섬유와 가발, 그리고 다른 경공업 제품들-을 시험 해보고자 하는 기업들이 저금리 대출을 받을 수 있게 했다. 여기(수출)에 성공한 기업들은 국가로부터 훨씬 더 큰 보상을 받았다.

이러한 발전 모델은 물론 어두운 측면을 갖는다. 국가와 기업 간의 이 아늑한 결합은 부패를 촉진했으며, 박정희의 권력을 강화시키고 억압을 심화시켰다. 그러나 순수하게 경제적인 기준에서 본다면, 그것은 작동했다. 수출은 증가했고, 한국 기업들은 국제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였으며, 인당 수입은 증가했다.

박정희는 결코 그의 군사적 뿌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가 장교로서 학습한 관리 기법과 군사적인 훈육은 발전을 위한 그의 접근 방식에 정보를 제공했다. 미 원조(aid) 공직자들은 "미군의 브리핑 매뉴얼에서 그대로 빠져나온" 듯한 박정희의 프리젠테이션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남한의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빠른 반응은 이러한 군사적 에토스의 반향을 포함한다. 비록 그 나라가 1980-1990년대에 훨씬 민주적인 지배체제로 이행했음에도 말이다. 한국의 한 감염 질병 전문가는 로이터에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마치 군대처럼 행동했습니다."

남한에서의 냉전 국가 건설은 국가 주도의 경제발전 뿐 아니라 새로운 종류의 정부 주도의 의료 개입을 이끌었다. 역사학자 John P. DiMoia가 설명한 것처럼, 1950년대, 많은 한국인은 여전히 서양의학에 익숙하지 않았으며, 처음부터 공식적인 건강 프로그램을 환영하지도 않았다. 박정희 통치 중에 이는 변화하기 시작한다. 박정희는 의료 전문가와 그에 대한 대중의 태도 모두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대중 보건 캠페인에 착수한다. 의사들과 그 지원진들이 새로운 전문적 기준을 요구 받는 동안, 대중은 가족계획, 그리고 국가가 조직한 또다른 의료 개입에 참여하도록 장려 받고 때로는 강요당했다.

신속한 코로나바이러스 검사 개시는 남한에서는 감염성 생물의 습격에 대한 최초의 대규모 작업은 아니다. DiMoia에 따르면 1960년대 남한에 창궐하고 있었던 가장 큰 의학적 문제 중 하나는 기생충 감염이었다. 박정희 정부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국가적인 검사 프로그램을 통하여 기생충을 박멸하기 위한 일제 작업에 착수헸다. 거의 20년 동안, 분석을 위한 분변 샘플 모으기는 남한의 어린이들에게 삶의 반복되는 한 부분이었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정부의 기생충 검사를 -때때로 마지못해 - 받아들이게 되었던 어린이들이 지금, 기꺼이 코로나바이러스 검사 줄에 서는 바로 그 어른들이다.

오늘날, 바이러스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대처는 결점 없는 것이 아니며, 이에 대한 비판도 없지 않다. 남한의 언론은 바이러스가 빠르게 전파되기 시작한 시점에 충분히 빠르게 중국인 관광객의 이동을 금지하지 않았다고 그를 비판하고 있다. 일부는 검사 시행에 수반되는 국가의 높은 감시 수준을 비판한다. 만약 스마트폰과 신용카드를 통해 시민들의 움직임을 면밀하게 파악할 수 없었다면, 문재인 정부는 접촉 동선 추적에 있어 매우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여기에도 역시 군사주의 정권에 반대했던 이들과 학생, 지식인들을 긴밀하게 감시했던 남한의 권위주의적 과거의 희미한 울림이 있다.

그러나 1970년대, 박정희의 권위주의 통치에 저항해 수감되었던 문재인은 그의 정책이 민주주의적 책임의 한계 내에 존재하도록 주의하고 있다. 한국이 민주주의가 아니기 때문에 성공했다고 주장하는 보수적 미국인 논평자들은 틀렸다. 사실, 남한은 중국 공산당이 강제하고 있는 가혹한 락다운이나, 여행 제한을 피하고 있다. 기술과 데이터를 사용함으로써, 남한은 미국 대부분의 부문보다 훨씬 넓은 수준으로 사업들을 개방한 채로 유지할 수 있었다.

남한의 인상적인 코로나바이러스 대처는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케이팝, 그리고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유례없는 성공을 거둔 한국 영화 "기생충"에서 보이는 한국의 커져 가는 문화적 영향을 강화시키고 있다.

어디서나 악몽 같은 수준의 전세계적 전염병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능숙한 대처는 전세계 보건 전문가들과 정책 입안자들로부터 모델로 인용되며 찬사를 받고 있다. 상원 의원 미트 롬니는 최근 미국이 급격하게 심화되는 재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말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탈리아를 따르지 말고 남한을 따르자"

불행하게도, 미국이 남한을 따라하기에는, 그리고 수천의 사망자를 피하기는 너무 늦었다. 그러나 우리는 남한의 사례에서 배울 수는 있다. 필요한 의료기기와 보호구 제조 부문에서 공공과 사적 영역 간의 더 나은 파트너쉽을 촉진하는 것, 그리고 미국인들로 하여금 생명을 구하기 위한 광범위한 검사를 포함한 공공 보건 계획을 수용하도록 촉진하는 것을 통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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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공부로서 소감을 말하자면 기사 하나를 통째로 번역해보는 것은 처음인데 1300워드 내외의 기사를 번역해서 간단한 퇴고까지 마무리하는데 2.25시간 정도 걸렸네요 효율성 무엇....근데 공부는 좀 무식하게 해야 되는 거 아니냐 싶기도. 근데 글 자체가 깔끔하고 쉬워서 쉽게쉽게 옮겼음. 저자 책도 읽어봐야겠다. 학위 논문의 한국 배경 설명 챕터에 써먹을 수 있을 듯 -_-

 

*현대 한국사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해당 시기 몸과 관련된 기술이 주요 관심사인 사람으로서 코멘트하자면 상당히 재미있고 꽤 설득력 있는 기사라고 생각한다. 영미권 오디언스들에게 한국을 어떻게 포지셔닝해야 하나, 그런 고민에도 참고가 되는 부분이 있었고.  다만 뒷부분의 케이팝과 기생충은 음 ㅋㅋㅋㅋ하지만 논문이 아니고 기사니까 이 정도 허용은 해도 되려나?. 찬찬히 읽어보면 약간 국뽕 유발하는 기사인데 왜들 그렇게 싫어하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한국사 하는 사람들이랑 같이 읽고 톡해보고 싶은 기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