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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rmany/박사과정 학생으로 살아가기

D+200 격조하였습니다

보리초코보 2020. 4. 13. 07:08

독일 온 지 얼마나 되었는지 평소엔 카운트 안 하고, 블로그 포스팅 할 때만 보는데 방금 200일 확인하고 소리 질렀다. 6개월이 훨씬 넘은 이 시점에 너는 무엇을 하고 있느냐, 라고 한다면 3월과 4월을 어중간하게 보냈다고 할 수 밖에 없다. 마음이 어중간한 와중에, 전 독일이 lockdown 상태에 돌입했고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격리된 채 허우적거렸다. 그 와중에 다행스러운 일을 꼽자면 긴장하고 있던 거주/체류허가residence permit의 건이 무사히 해결되었다는 것, 그리고 이번주 후반부터 슬슬 책상에 제대로 앉을 정신이 돌아왔다는 것이다.

 

거주허가와 관련해서 조금 더 적어보자면, 웰컴센터가 학내 외국인 단체 미팅 잡아줘서 거주허가 신청한 게 2월 13일. 다만 한국에서 가져간 증명사진이 biometic photo로 식별이 안 된다고 해서 사진을 새로 찍어 다음날 또 시청에 가야 했다. (*혹시 해외 나간다고 증명사진 챙겨가실 분은 필히 무보정/노보정 사진을 달라고 하세요. 한국 보정 너무 디폴트야 흑흑) 사진 인식 안 된다고 해서 내가 ???!!하면서 그럼 테르민도 새로 잡아야 하냐고 했더니 의외로 융통성있게 어차피 신청은 거의 다 됐으니까 테르민 없이 그냥 내일 사진만 가져오라고 해서 처리해줬다. 그렇게 신청 마무리하고 3월 둘째 주 무렵, 셋째주가 비자 만료일인데도 어떤 관련 서류도 못 받아서 웰컴센터 쪽에 문의했더니 시청에 가서 거주허가 카드를 픽업하던가 아님 fictional certification를 받아오라고. 그래서 시청에 갔더니 시청이 문을 닫은 것이에요 "due to Corona crisis." 시청은 비교적 빠르게 문 닫고 메일 및 전화 창구만 오픈, 학교도 곧 교직원들 재택근무 시작해서 웰컴센터 회신은 늦고,  결국 직접 시청에 전화해서 '거주허가를 신청했는데, 관련 레터는 아직 못 받았고 비자는 곧 만료된다!'고 절박하게 외쳤더니 temporary visa를 보내주겠다고 했는데 이게 근 일주일이 되도록 안 와서 쭈구리 되고. 얼마나 쫄렸냐면 비자 만료 전날 새벽, 무려 지도교수님께 혹시 시청에 전화해서 무슨 문제있는지 확인해주실 수 있냐고 메일을 썼다. 지난 학회 때 지도교수님이 글로벌 연구 프로젝트 운영 관련 발표하시면서 연구원들 비자 문제로 고생한 거 얘기하셨는데 나중에 그런 발표 하시면 내 케이스도 추가되지 않을지....는 반쯤 농담이지만 팀원들 전체 필드웍에 문제 생기긴 했다. 나도 그렇지만 정말 어떡하지. 아무튼, 교수님의 문제없대! 라는 확답 이후에 열흘이 지나고서야 우편함에서 무려 거주허가증을 발견했을 때는 너무 안심되어서 3분간 내적 댄스 추고 교수님한테도 왓츠앱 메시지 보냈다.

거주허가 신청 전적이 있는 동료 왈 '내 경우는 6주 쯤 걸린 것 같아(심지어 남편은 두달째에도 안 와서 시청에 찾아갔었어)', 라고 했었고 익히 들었던 독일 행정의 느림을 고려해보면 내 케이스도 굉장히 느린 건 아닌데 이것도 지났으니까 말할 수 있는 거겠죠. 거주허가 못 받으면 이 시국에 한국 돌아가야 하는 건가? 그럼 고용 계약은 어떻게 되는거지? 한국가서 다시 코스웍? 한국가면 조교 자리가 있나? 어디서 살지? 등등 온갖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는데 정말 외국인으로서 비자/거주허가의 의미 새삼 생각한 시간이었다. 나같이 단순히 시점이 겹친 거 외에도 이번 사태로 고용문제 겪으면서 비자/거주허가로 맘 걱정하는 분들 꽤 있는 것 같은데 그런 모든 재외국민 여러분의 행운을 기원합니다. 정말로. 

 

쓸데없이 거주허가 얘기가 길어졌는데 이것이야말로 제가 얼마나 쫄렸는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다. 저는 보통 걱정거리를 남과 공유하지 않는 편이고, 얘기한다면 보통 해결된 다음에나 공유하는데 주변에 이리저리 이야기했을 정도. 공유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면 딱히 얘기해야 할까? 가 내 기본 마인드인데(친구는 네가 첫째라서 그래, 라고 가끔 말하는데 정말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이번을 계기로 문제를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적으로 도움이 되는구나, 알게 됐다. 그러고보니 지지난주에 팀 미팅 직후에 나처럼 독일에 혼자 온 동료가 왓츠앱으로 너 괜찮냐고 물어봐서 말 그대로 "share emotion"했는데 그날 저녁도 엄청 위안이 됐네. 가끔 말 너무 많이 하지 말아야지, 생각하곤 하는데 또 어떤 때는 말로 내어놓는 게 중요하다 싶기도 하고. 

 

아무튼, 좀 위험하다 싶은 때가 있었는데 거주허가 레터를 받은 이후로 조금씩 올라오는 것 같다. 그렇다고 안 되던 것이 짠! 하고 되는 것은 아니고 서서히 올라온다는 느낌. 오늘 이렇게 긴 글을 적어내릴 수 있다는 것만 봐도. 사실 최근 근황을 몇번이나 쓸까 말까 망설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전선에 서 있고, 또 생활전선에서 강제로 밀려난 상황에서 (전쟁의 비유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심각함의 측면에서는 적절한 비유라고 생각한다. 메르켈이 2차 대전 이후 최대의 위기라고 했을 때 에엥?한 부분 있는데 이제는 실감이 난다.) 적어도 당장의 건강과 끼니를 걱정할 필요가 없는 유학생의 작은 우울과 불안을 글로 남겨도 되는 걸까. 거의 보는 사람이 없는 장소여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쓴다. 무형의 불안과 우울과 염려를 내 안에서 키워가는 것보다는 꺼내서 그 형태를 고정시켜서 들여다보는 게 나으니까. 내 작은 문제도 없는 게 아니고 결국은 내가 어떻게든 해결해야 할 문제니까(해결이 적당한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아 연구 얘기 쓰고 싶은데 미묘하네....아무튼 제 학위 논문 주제는 통상의 한국과학/기술사 논문처럼 연대순 특정 기관/체제의 형성을 보는 게 아니라 굳이 말하면 옴니버스식 구성(?!)이라 아 이걸 어떻게 하나로 묶지? 이래도 되나? 그런 생각 많이 하면서 머리 쥐어뜯었는데 문득 지금 박사 논문 쓰는 동료들 다 거대 이벤트를 쫓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닫고 마음이 좀 편해졌다. 아 주요 내용 없이 이렇게 쓰니까 엄청 뜬구름 잡는 얘기같네요. 아무튼 그렇고 이번 주말엔 진짜로 "생산성 있는 한 주였다"고 쓸 수 있게 해야지. 얍얍. 트위터도 그만 좀 보고. 트위터하니까 생각났는데 마리 힉스 완전 트잉여 아닙니까 제가 팔로하는 존잘 기술사학자 중에 최고 트잉여인듯 그리고 그 댁 토끼는 참 귀엽다. 

 

그런데 정말 필드웍 어떡하냐...흑흑 4월 동안 인트로 쓰면서 좀 생각해봐야겠다. 한국은 못 가도 최소 베를린엔 가야 국립중앙도서관 자료 열람 가능인데 뭐 할 수 있는 것을 하면서 상황이 호전되길 기다려 봐야겠다. 미국 아카이브 자료도 있나 좀 보고. 

창문이 보이게 책상을 옮겼다 독일의 봄날씨는 이렇게까지 좋을 필요가 있나 싶을 정도로 매일 맑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