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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rmany/박사과정 학생으로 살아가기

D+141 학위 논문 첫 챕터 회람

보리초코보 2020. 2. 13. 07:56

-지난 주 화요일 박사 논문의 첫 챕터를 팀원들에게 회람했다. 회람 거의 직전에 워드 번호 매기기 기능이 갑자기 먹통이 된 걸 발견해서 한국어 육성으로 욕좀 하고. 11시쯤 오피스에서 나섰는데 싱숭생숭으로 표현하긴 좀 나쁜 기분이었다. 비단 이 글 뿐만이 아니라 아카데믹한 정체성을 가지고 쓴 글을 마감하고 나면 얼마 간 이런 우울감이 찾아왔던 것 같다. 수업 페이퍼든, 펠로쉽 지원 서류든.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못 했다는 느낌으로 설명하기엔 책이나 잡지 원고는 홀가분하다는 느낌이었고, 실제로도 곧 잊어버리곤 하는데 차이가 뭔지 모르겠다. 편집자에서 대학원생으로 점프한 이유 중 하나가 온전한 나의 컨텐츠를 가지고 싶다,는 거였는데 실제로 온전한 나의 컨텐츠를 가진다는 것의 무게가 무거운 탓인지.  이 기분에 대해서는 좀 생각해 봐야겠다.

 

-아무튼 중요한 일이니 정리를 좀 해야겠다. 

학위논문 3챕터 draft

인덱스 포함 13348 words, Calibri 12pt, double space 49pages 

소요기간: 2019.11.14-2020.2.4(일 단위 연구노트 쓰니까 이런 확인이 가능하네. 잘했다 나)

positive:

1)첫 긴 글 영어 라이팅. 앞으로 소요시간 줄어들 가능성.

11월에 1,2절, 12월에 3절, 1월에 4절을 썼고 회람 전 1절로 돌아가서 전체 검토를 몇 번 했는데

확실히 1,2절에 비해서 4절이 (영어로서) 좋아진 느낌이 있다. 

2)독일 생활 적응기에 쓴 글. 이 역시 안정되면 좀 더 나아지겠지.

3)밥값했다는 느낌(ㅋㅋ). 

4)frameworks, concept, argument가 분명치 않은 상태에서 쓴 글. 방향이 정리되면 좀 더 수월해지지 않을까? 

(하지만 석사 논문때의 경험으론 argument는 쓰면서 만들어지는 거였던 것 같다....후후...

뉴트럴에 넣어야 하나?)

negative: 

1)사료를 거의 손에 넣은 상태, 다른 방향이지만 한번 서사를 정리한 글인걸 감안하면 

무의 상태에서 쓸 다른 챕터는 훨씬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

 

-막상 정리해보니 첫 챕터치고 그다지 네거티브하진 않은 것 같다. 지난 3달간 확인한 건 역시 쓰는 건 고통스럽고 즐겁다는 것. 석사 논문을 쓰면서 볼만큼 봤다고 생각했는데 큰 맥락의 일부로 보았을 때 새롭게 보이는 지점들이 또 보이는 게 너무 익사이팅하다. 괴롭지만 ㅎㅎ대학원 첫 학기 페이퍼 쓰면서 느꼈던 '생각을 밀고 밀면 밀린다'는 그 감각이 역시 너무 좋은 것 같다. 연구란. 더 잘하고 싶다. 

 

-지난 화요일에 페이퍼 회람하고, 수요일은 (사실 재택 근무일이지만) 오전에 링피트하고, 오후엔 링피트 때문인지 긴장이 풀린 탓인지 완전 기절해서 영어 수업까지 놓치고 잤다. 노쇼인 셈인데 에밀리가 다음 수업으로 미뤄줬다. 고맙구먼. 레슨 예약분 소진하면 다른 튜터 찾아볼까 했는데 그냥 쭉 이어갈까 싶기도 하다. 어차피 선생님에 따라서 완전 달라질 것 같지 않고 취향이 잘 맞아서 톡도 즐겁고. 토이스토리4를 함께 실망해준 사람 ㅋㅋ

 

-목요일, 위클리 세미나 엔 심판의 날...! 내 글가지고 하는 첫 논의였는데 전반적인 반응은 괜찮았던 것 같은데 방향이랑 주장이 없는 부분, 그래서 온갖 얘기를 하고 있는 게 현재 제일 문제인 것 같다. J가 인스트루멘탈 테크놀로지 얘기 한참 했는데 약간 감이 안 왔어. 연구 토픽에 대한 펑셔널한 설명이 필요하지 않느냐는 얘기엔 할말 많았는데 영어톡 길어지니까 좀 정신이 혼미해져서 말을 제대로 못했다 (하지만 이건 오늘 A 글 톡하면서 같이 얹어서 좀 정리된 것 같다.) 적어도 사료적으론 충분했던 것 같다. 이걸 모처 학회에 개별 페이퍼로 내느냐 마느냐는 고민이 되네요. 사람들 코멘트 들어보고 싶긴 한데. individual paper로 패스할려면 얼마나 잘 써야 할까 ㅋㅋㅋ근데 트라이해서 손해볼 것도 없지않냐 마음이긴 하다. 영어 교정 받는 것 감안하면 이번주 초고-다음주 중 마무리해야해야. 

 

-화요일 내 글 쓰느라 독일어 수업 놓친 걸 기점으로 완전히 기브업했다^^. 내가 어학에 뒤쳐질 수 밖에 없는 늘근이라 그런가 했는데 동료랑 톡하다보니 수업 자체도 좀 문제가 있는 것 같고 적어도 요 1년은 영어 수준을 높이는 게 여러모로 이득이라는 결론. 설마 강습료 토하라고 하는 건 아니겠지? 하지만 모 토하라면 토해야지 뭐 ㅋㅋ 그리고 세미나 후 금요일은 휴가내고 모처럼만에 생각없이 쉬었다.

 

-그러고보니, 이제야 주거가 안정되었다. 작년 9월부터 근 5개월간 2개월 이상 같은 장소에 거처를 둔 적이 없다니 정말로 맙소사이며 나에게(사실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거주의 안정이 정말 중요하다는 사실을 확인한 시간. 물론 하반기에 또 집 알아보고 이사해야 하지만 적어도 6월까지는 걱정하지 않을테다. 아파트 누수로 인한 몇달간의 거주 불안정, 여기서 기인한 계단에서의 발목 접지름, 이게 지금까지 독일와서 제일 힘들었던 부분인데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네. 그냥 받아들여야죠 뭐. 여기다 쓰는 걸로 이제 그만 생각해야지ㅋㅋ(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레귤러리 조깅이나 수영만 할 수 있으면 너무나 좋겠단 말이에요)

드디어 정리된 책상. 이것도 가을이 되면 '전' 아파트의 풍경이 되겠지만.

 

-기생충 시상식 영상 보면서 영어의 유창함이란 항목에 전혀 구애받지 않는 봉준호의 스탠스에 엄청 위안 받았다. 스콜세지 말 인용하는 장면 정말 멋있지 않았나? 타이밍도 그렇고. 아무튼 세계적인(ㅋㅋㅋ) 봉감독과 저는 천지차이입니다만 컨텐츠가 좋으면 어떻게든 통하는구나, 영어 유창하지 않다고 쫄지말고 자신감을 갖자는 물은 축축하다스러운 말을 해봅니다. 물론 좋은 컨텐츠의 기준이 유니버설한 것도 아니고, 결국 헐리웃 키드가 만들어낸 것임을 감안해야겠지만. 한국 바깥에서 영어 내지는 유로센트리즘의 자장 안에서 한국의 것을 다루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진 장면이 아닐까 생각했다. 담날 오피스 갔더니 A가 시상식 되게 좋았다고 해서 괜히 뿌듯해서 회사 다닐 때 봉준호 본 얘기해두림. 이 친구네 부부랑 같이 기생충 보기로 했고 독마존 프라임엔 기생충 20일에 풀리는데 영어자막도 꼭 지원하길.  사실 영화가 막 기대되진 않고 마음 속에 짜파구리 요리사 할 생각만 가득하다. 살인의 추억 정말 좋아하고 마더도 극장가서 보고(마지막의 그 오싹한 찝찝함은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그러고보니 설국열차도 극장가서 봤는데 그 설국열차부터 좀 취향과 안 맞았던 것 같다. 하지만 쓰다보니까 궁금하긴 하다. 대체 어떻게 만들었긴래 다들 잘 만들었다고 비명지르는건지. 그나저나 설국열차 얘기하니까 양갱먹고 싶다.